고비
최승호 시집|현대문학|149쪽|

나를 찾아 텅 빈 사막을 걷다
“고비 사막에 가면, 아침에는 봄, 한낮에는 여름, 해질 무렵이면 가을, 한밤중에는 겨울입니다.”
최승호 시인은 지난해 5월 고비 사막에서 열흘을 지냈다. 하루에 사계가 진행되는 그곳에서 그는 사실 10년을 보낸 셈이다.
최승호 시인은 지난해 5월 고비 사막에서 열흘을 지냈다. 하루에 사계가 진행되는 그곳에서 그는 사실 10년을 보낸 셈이다.
시간의 압축 체험 때문인지, 그의 신작 시집에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는 무너진다. 마치 바람에 날리는 사막의 모래처럼 모든 것은 부드럽게 허망하게 떠돌아다니다가, 어딘가로 사라진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사실 지평선은 직선이 아니고, 활처럼 휘어있는데,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고 말한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거대한 사막이 보인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사실 지평선은 직선이 아니고, 활처럼 휘어있는데,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고 말한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거대한 사막이 보인다.
‘어느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사방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사방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지평선의 충격은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득한 곳에 선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직선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커다란 선은 둥글었고/ 그 텅 빈 원 속에/ 원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시 ‘지평선’ 부분)
앞으로 간다고 하지만, 결국 제자리 걸음에 불과한 단순한 인생이 복잡하게 여겨지는 것은 온갖 욕망과 환상 때문이 아닐까. 거대한 원의 테두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시선이 있기에 지향점이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처럼 바닥을 모르는 욕망의 심연이 우리를 헤매게 한다.
최승호 시인은 거대한 사막에서 모래알처럼 작은 인간의 헛됨을 깨닫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헛됨의 끝에 있을 공허에서 역설적으로 존재를 깨닫는다. 그것은 모든 만물에 신(神)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物活論)적 상상력의 펼침이다.
‘꽃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피어날 수 있으며/ 새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노래할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하나님은 나를 믿고 나무들을 믿고 물고기들을 믿는다’(시 ‘입적’ 부분)라는 시인의 노래는 ‘무신론자의 신학(神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막은 황폐하다고 하지만, 시인에게 사막은 새로운 시의 샘물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입증한다. 폐허는 새로운 창조의 공간인 것과 같다. 창조는 기존의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사막은 황폐하다고 하지만, 시인에게 사막은 새로운 시의 샘물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입증한다. 폐허는 새로운 창조의 공간인 것과 같다. 창조는 기존의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지갑이 없다/ 휴대폰이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모래알 몇 개/ 그게 내 전 재산이다/ 나는 지금 가난하다/ 카드가 없다/ 현금이 없다/ 주머니엔 모래알 몇 개/ 알몸에 옷을 걸쳤지만/ 나는 지금 거지다/ 고비 사막에 나타난 거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때때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하는/ 인생을 모르는 거지/ 사막을 모르는 거지’(시 ‘거지’ 부분)
25세, 인간의 힘만으로 지구를 여행하다(전2권)
스티비 스미스 지음 | 정은지 옮김 | 디오네 | 각 232, 248쪽 |
스티비 스미스 지음 | 정은지 옮김 | 디오네 | 각 232, 248쪽 |
인생 뭐 있어, 그냥 떠나는거지
이런 외신 기사가 있었다. “25세에 세상을 어둡게 보면 평생 염세주의자가 되고, 그 나이 때 세상을 밝게 보면 낙천주의자로 남는다.” 통계에 바탕을 둔 어느 과학자의 이 통찰은 경험상 맞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환경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에 있는 OECD 본부에서 환경 연구 분야 일을 하던 스티비 스미스는 25번째 생일을 앞두고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인생의 3분의 1지점을 맞으며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란 고민에 든 것이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환경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에 있는 OECD 본부에서 환경 연구 분야 일을 하던 스티비 스미스는 25번째 생일을 앞두고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인생의 3분의 1지점을 맞으며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란 고민에 든 것이다.
그 때까지 스티비가 하루도 빠짐 없이 목격한 것은 “사로잡힌 삶, 반쪽인 삶, 결코 오지 않을 충만의 신기루에 매달리는 삶들 뿐”이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묵묵히 사회에 순종하는, 둔감하고 평범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진정한 내 인생’을 그는 살고 팠다.
그래서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는 대학 친구인 제이슨에게 동행을 제의한다.
“그런데, 생판 몸으로만 때울 거거든. 육지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다에서는 노를 젓거나 페달을 밟고, 어때?”
“그러지 뭐.”
본격적인 스포츠는커녕 텐트 한번 쳐본 적 없고, 자전거를 5㎞ 이상 타본 적도, 바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조차 없는 이들은 “고통을 늘릴 이유가 없다”는 ‘명쾌한’ 이유로 사전 훈련도 없이 1994년 11월 7일 페달 보트와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유럽에서 북미까지 여행을 떠나 1999년 5월 6일, 동력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지구를 돈 첫번째 여행자가 된다.
이 책은 영국 그리니치→도버 해협→센 강→파리→오를레앙→지앵→스페인→포르투갈→대서양→미국 횡단→태평양→하와이로 이어진 기나긴 여정의 기록이다.
그래서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는 대학 친구인 제이슨에게 동행을 제의한다.
“그런데, 생판 몸으로만 때울 거거든. 육지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다에서는 노를 젓거나 페달을 밟고, 어때?”
“그러지 뭐.”
본격적인 스포츠는커녕 텐트 한번 쳐본 적 없고, 자전거를 5㎞ 이상 타본 적도, 바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조차 없는 이들은 “고통을 늘릴 이유가 없다”는 ‘명쾌한’ 이유로 사전 훈련도 없이 1994년 11월 7일 페달 보트와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유럽에서 북미까지 여행을 떠나 1999년 5월 6일, 동력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지구를 돈 첫번째 여행자가 된다.
강철같은 의지와 불굴의 신념? 그런 거 없다.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바다로 나가기 전날 밤에는 반드시 술판을 벌이고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며 페달을 밟는다.
‘대장정’의 첫날 출발 5분 만에 길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자동차 전용 다리를 굳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체포되기도 한다. 오랜 항해로 생긴 염증을 바늘로 찔러 고름을 빼내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배에서 떨어져 빠져 죽을 뻔한 것보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이들은 빨래를 늦게 걷은 걸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고,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덜 페달을 밟으려 갖은 핑계를 댄다. 둘은 그러나, 가장 소중한 걸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빨래를 늦게 걷은 걸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고,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덜 페달을 밟으려 갖은 핑계를 댄다. 둘은 그러나, 가장 소중한 걸 경험하게 된다.
가족, 한 줄기 바람, 물 한 모금, 낯선 이가 주는 도움, 지는 해의 아름다움, 작은 친절, 사소한 일상, 죽음과의 대면, 현재를 즐기는 것, 이런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런던 사무실에 죽치고 있었다면 눈을 감는 순간까지 몰랐을,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이들이 몸을 맡긴 보트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해탈’ ‘자유’를 뜻하는 ‘목샤’였고, 25~30세를 지나며 이들은 진정한 자유의 한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이들이 몸을 맡긴 보트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해탈’ ‘자유’를 뜻하는 ‘목샤’였고, 25~30세를 지나며 이들은 진정한 자유의 한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하정임 옮김 다른 출판사|304쪽|
소냐 나자리오 지음|하정임 옮김 다른 출판사|304쪽|
멕시코 남부 작은 마을 라스아노나스. 농장 노동자 푸엔테스는 퇴근 길에 온 몸이 피투성이에 속옷만 입은 채 신음하던 소년을 봤다. 맨발에 다리는 절룩거렸고 오른쪽 정강이는 깊이 베였다. 윗 입술은 찢어지고 얼굴 왼쪽이 퉁퉁 부어올랐다. “물 좀 주세요.” 열일곱 엔리케였다.
미국으로 돈 벌러간 엄마를 찾아서 목숨 걸고 국경 넘는 중남미아이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그리움으로…
2000년 3월 엔리케는 11년 전 미국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고향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를 떠났다. 버스로 과테말라를 지났고 멕시코에서부터는 화물열차 위에 올라탔다. 엔리케에게 남자들이 다가왔다. “몽땅 다 벗어!” 또 다른 이는 곤봉을 휘둘렀다. 푼돈 밖에 못 건진 강도들은 엔리케를 두들겨 팼다. 엔리케는 달리는 열차 아래로 뛰어내렸다.
LA타임스 기자인 소냐 나자리오(47)는 미국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에서 무일푼으로 화물열차 지붕에 올라 수천㎞를 여행하는 아이들을 취재했다. 매년 4만8000명의 아이들이 혼자 불법으로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서 이주해오며 그 중에서 3분의 2 정도가 미국 국경을 넘는다고 한다. 국경순찰대가 체포한 아이들의 평균 나이는 열다섯. 일곱 살짜리도 있었다.
나자리오는 2000년 5월 미국 접경 멕시코 국경도시 누에보라레도에서 엔리케를 만났다. 테구시갈파의 엔리케 가족을 인터뷰하고 엔리케의 여행 경로를 같은 방식으로 되밟았다. 온두라스에서 버스를 탔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산루이포토시까지는 화물열차로, 다시 미국 국경까지는 히차이크를 했다. 여행거리만 2574㎞, 취재에 꼬박 6개월이 걸렸다.
깜깜한 밤에 화물 열차 지붕에 매달려 가는 일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깜빡 졸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잘리거나 머리가 깨져 죽기 일쑤였다. 치안이 불안한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졸다간 무장강도의 사냥감이 됐다.

- 중남미 출신 남자 아이가 화물열차 지붕에 앉아 미국에 돈 벌러간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가고 있다. 다른출판사 제공
LA타임스 기자인 소냐 나자리오(47)는 미국에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에서 무일푼으로 화물열차 지붕에 올라 수천㎞를 여행하는 아이들을 취재했다. 매년 4만8000명의 아이들이 혼자 불법으로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서 이주해오며 그 중에서 3분의 2 정도가 미국 국경을 넘는다고 한다. 국경순찰대가 체포한 아이들의 평균 나이는 열다섯. 일곱 살짜리도 있었다.
나자리오는 2000년 5월 미국 접경 멕시코 국경도시 누에보라레도에서 엔리케를 만났다. 테구시갈파의 엔리케 가족을 인터뷰하고 엔리케의 여행 경로를 같은 방식으로 되밟았다. 온두라스에서 버스를 탔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산루이포토시까지는 화물열차로, 다시 미국 국경까지는 히차이크를 했다. 여행거리만 2574㎞, 취재에 꼬박 6개월이 걸렸다.
깜깜한 밤에 화물 열차 지붕에 매달려 가는 일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깜빡 졸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잘리거나 머리가 깨져 죽기 일쑤였다. 치안이 불안한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졸다간 무장강도의 사냥감이 됐다.
멕시코 남부 라아로세라의 철길에 사는 주민 로페즈는 대문 앞에 한 달에 한번 꼴로 팔이나 다리, 머리가 없는 소년과 어른들이 누워있었다고 했다. 이민국 직원과 경찰에게 쫓겨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거나 내릴 때 일어나는 사고였다.
아이들은 이 죽음의 열차를 ‘사람 잡아먹는 열차’라고 했다. 더 무서운 것은 열차 지붕 위의 이민자들을 노리는 무장강도였다. 10대들에게 칼끝을 들이대고 옷을 벗긴 뒤 돈을 뺏고 두들겨 팼다. 여자 아이들은 강간당했다. 열일곱 웬디도 일행 10명과 함께 치아파스를 지나다 무장강도에게 강간당했다. 1997년 휴스턴 대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건너온 이주민 여성 여섯 명 중 한 명이 강간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엔리케는 밀입국 알선자의 안내로 국경을 넘어 2000년5월28일 노스캐롤라이나의 엄마 집에 도착했다. 122일 동안 여덟 번의 시도만에 1만9310㎞를 오락가락하다 성공한 것이다. 엄마를 찾은 아이 대부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엔리케는 밀입국 알선자의 안내로 국경을 넘어 2000년5월28일 노스캐롤라이나의 엄마 집에 도착했다. 122일 동안 여덟 번의 시도만에 1만9310㎞를 오락가락하다 성공한 것이다. 엄마를 찾은 아이 대부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여겨 분노를 터뜨리고 깡패가 되기 일쑤다. 엔리케도 그렇게 엄마와 겉돌다가 술과 마리화나에 빠졌다. LA의 심리학자 브래들리 필론은 밀입국한 아이 10명 중 하나만이 자기 부모를 받아들이고 부모에게 느꼈던 증오감을 치유한다고 했다.
‘엔리케의 여정’은 엔리케의 여자친구 마리아가 2004년 봄 엔리케를 찾아 온두라스를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네 살바기 딸 자스민을 남겨 놓고서다. 자스민도 언젠가 화물열차 지붕에 매달려 엄마·아빠를 찾으러 갈지도 모른다.
이산가족을 막는 길은 뭘까. 온두라스에 있는 마리아의 엄마는 말했다. “돈 벌 수 있는 일자리요. 그게 다예요.” LA타임스 기자인 나자리오는 ‘엔리케의 여정’ 보도로 200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산가족을 막는 길은 뭘까. 온두라스에 있는 마리아의 엄마는 말했다. “돈 벌 수 있는 일자리요. 그게 다예요.” LA타임스 기자인 나자리오는 ‘엔리케의 여정’ 보도로 200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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