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소식](여기는 남아공) '이정수-박지성 연속골!' 한국, 그리스 깼다(종합) ▶풍경(요모-조모)

 

입력시간 :2010.06.12 22:20
▲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에서 전반 7분 선제골을 터뜨린 이정수.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유럽의 강호 그리스를 꺾고 첫 원정 16강을 위한 첫 발을 산뜻하게 내딛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2일(이하 한국시간)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B조 예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전반 7분 이정수의 선제골과 후반 7분 박지성의 추가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월드컵 역사상 원정경기에서 유럽팀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뒀다. 이번 월드컵 전까지 한국은 홈에서 열린 2002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고 유럽팀을 상대한 12경기에서 4무8패에 그쳤다. 아울러 지난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에 이어 원정 두번째 승리도 함께 챙겼다.

이날 승점 3점을 챙긴 한국은 첫 원정 16강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남은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전에서 승점 2점 이상을 챙길 경우 16강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날 그리스전에 맞춰 공격적인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골키퍼에 이운재 대신 최근 컨디션이 좋은 정성룡을 선발 출전시켰다. 포백 수비는 이영표, 조용형, 이정수, 차두리가 출격했다. 미드필드는 이청용, 기성용, 김정우, 박지성이 책임졌다. 최전방 투톱으로는 염기훈과 박주영이 선발 출장했다.

반면 그리스는 주전 수비수인 소리티오스 키르기아코스가 부상 때문에 결장하면서 수비 공백이 불가피했다.

한국은 경기 시작부터 활발하게 공격을 펼친 끝에 전반 7분 귀중한 첫 골을 터뜨렸다. 그리스 진영 왼쪽에서 이영표가 얻어낸 프리킥을 기성용이 반대쪽 포스트를 향해 찼고 이를 수비 뒤로 빠져 쇄도하던 이정수가 절묘한 오른발 발리슛으로 연결해 그리스 골망을 갈랐다.

이정수의 골은 한국의 역대 월드컵 출전 역사상 최단시간 선제골 기록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전반 26분만에 황선홍이 첫 골을 터뜨린 바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하석주가 전반 27분에 선제골을 기록했다.

▲ 그리스전에서 맹활약하는 차두리.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이후에도 한국은 박지성과 차두리가 활발하게 돌파를 시도하며 그리스 수비를 위협했다. 전반 17분경에는 이청용이 골문앞에서 상대 수비의 파울성 플레이를 유도했지만 파울이 선언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은 전반 27분경에도 박주영이 빠른 속공으로 그리스 골키퍼와 1대1 기회를 잡았지만 아깝게 골키퍼 선방에 막혀 추가골을 넣는데 실패했다.

그리스도 실점을 허용한 뒤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특히 체격적 우위를 이용해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한국 수비수 뒤쪽 공간을 노리며 롱패스를 잇따라 투입했다. 하지만 조용형 이정수로 이어지는 중앙수비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해 그리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전반을 1-0으로 앞선 채 마친 한국은 후반전에서도 거세게 밀어붙였다. 한국은 이청용과 차두리가 적극적으로 측면을 돌파하면서 계속 기회를 노렸다.

▲ 후반 7분 추가골을 터뜨린 박지성.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결국 한국은 후반 7분 박지성의 추가골로 그리스의 추격의지를 꺾었다. 상대 볼을 가로챈 박지성은 그리스 진영 가운데에서 상대 수비수 2명을 제친 뒤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에서 멋진 오른발 슈팅으로 그리스 골문 오른쪽을 뚫어 두 번째 골을 팀에 안겼다.

박지성으로선 자신의 월드컵 통산 3호 골. 아울러 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 이어 3회 연속 월드컵 득점 기록을 세웠다.

두 골을 내준 그리스는 후반 중반부터 적극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 수비는 큰 위기 없이 효과적으로 그리스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후반 30분 경 기성용을 빼고 김남일을 투입해 수비를 보강한 한국은 후반 37분경 그리스 공격수 게카스에게 결정적인 중거리슛을 허용했다. 하지만 골키퍼 정성룡이 몸을 날려 슈팅을 막아내 실점 위기를 넘겼다.

이후에도 한국은 체력을 비축하면서 그리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 값진 승리를 지켜냈다.

◇한국(4-4-2)
골키퍼 : 정성룡
수비수 : 이영표-조용형-이정수-차두리
미드필드 : 박지성-김정우-기성용(<->75분 김남일)-이청용
공격수 : 박주영(<->87분 이승렬)-염기훈

◇그리스(4-3-3)
골키퍼 : 알렉산드로스 조르바스
수비수 : 바실리오스 토로시디스-루카스 빈트라-아브람 파파도풀로스-유르카스 세이타리디스
미드필드 : 요르고스 카라구니스(<->46분 흐리스토스 파차조글루)-알렉산드로스 지올리스-콘스탄티노스 카추라니스
공격수 : 요르고스 사마라스(<->58분 디미트리오스 살핑기디스)-테오파니스 게카스-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61분 판텔리스 카페타노스)
출처 : 이데일리

[로켓과학] 스윙바이 ▣과학기술동향

스윙바이

‘갈릴레오’는 12년에 걸친 기획과 개발 기간을 거쳐 1989년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목성탐사
선이다.
이 우주선은 미국의 우주왕복선 중 하나인 아틀란티스호를 타고 지구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1986년에 있었던 챌린저호 사고 후 NASA에서 안전성 문제로 왕복선 상단(upper stage)에 액체추진
로켓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갈릴레오의 목성탐사계획에도 문제가 생겼다.
아틀란티스의 상단은 IUS(Inertial Upper Stage)라는, 보다 성능이 낮은 고체추진로켓으로 교체되었
는데, 이 로켓은 갈릴레오를 목성 궤도로 바로 보내줄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갈릴레오는 고민 끝에 우주로켓이나 우주선 자체 추진력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대신 금성과
지구로부터 몇 차례에 걸쳐 속도를 ‘훔쳐서’ 목성까지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우주왕복선을 떠나는 목성탐사선 갈릴레오.
<출처: NASA>

 

별로부터 속도를 훔쳐라. 작전명 V-E-E-G-A

갈릴레오는 목성까지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사 4개월 정도 후에 금성으로부터 2.2km/s,
다시 10개월 후 지구로부터 5.2km/s, 다시 2년 후 지구로부터 3.7km/s의 속도를 각각 훔쳐낸다.
세 차례에 걸쳐 훔쳐낸 속도증분(늘어난 속도)은 무려 11.1km/s나 된다! VEEGA(Venus, Earth,
Earth Gravity Assist) 작전은 주효했다.
6년 여에 걸친 긴 여행 끝에 갈릴레오는 목성에 도착하고, 이후 목성의 대기권과 그 주변, 특히
목성의 네 위성인 에우로파, 칼리스토, 이오, 가니메데를 탐사하게 된다.

 

참고로 이들 네 위성을 지구에서 최초로 관측한 과학자가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였으니, ‘갈릴레오’가 왜 ‘갈릴레오’가 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2003년,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에우로파의 얼어붙은 지표 아래에 있음이 거의 확실시되는 광활한 소금물 바다가 지구에서 온 물건인 자신 때문에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목성에 일부러 충돌, 스스로 흔적 없이 사라짐으로써 8년에 걸친 목성 궤도에서의 임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우주로켓이 지구를 떠날 때만 해도 그토록 부담스럽던 ‘중력’이었는데, 아주 멀리 떨어진 별까지 여행하려면 이렇게 우주선을 끌어당겨주는 힘이 무지무지 필요할 때가 많다. 만약에 별과 별 사이를 오가는 데 필요한 그 모든 에너지를 로켓이나 우주선의 자체 추진기관이 다 감당하겠다는 생각이었다면, 보이저(Voyager) 시리즈를 비롯한 거의 모든 행성탐사 우주선들은 아직도 지구에 발이 묶여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선은 이렇듯 원하는 방향으로 속도를 증가시켜야 하거나 궤도면을 바꾸어야 하는 등 에너지가 사용되는 기동을 할 때 자신의 능력(추진제)을 사용하는 대신에 별의 힘을 ‘슬쩍’하는 일을 예사롭게 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갈릴레오의 여정, 지구를 출발하여 금성을
스치고 다시 지구를 2번 스쳐 목성으로 갔다.
<출처: NASA>

 

스윙바이

사실 우주선이 이런 ‘중력 도움(gravity assist)’으로 우주여행을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니다. 우주선이 별로부터 에너지(즉, 속도)를 훔쳐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란, 일명 ‘스윙바이
(swingby, flyby라고도 하며, 우주선이 궤도 수정을 위해서 별의 중력장을 이용하는 ‘행성궤도
근접 통과’를 일컬음)’뿐이다. 다시 말해 ‘별에 잠깐 다가갔다가 다시 멀어지기’만 해주면 된다
는 얘기다. 물론 이 스윙바이가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만은 않지만 말이다.

 

우주는 넓고 별은 크다. 태양계 행성 중 가장 가볍다는 수성의 질량이 3.3×1023kg 정도이고,
가장 무거운 목성은 1.9×1027kg에 달한다. 우주선의 무게가 몇 톤씩 된다 해도, 별의 무게에
비한다면 너무나 존재감이 없는 것이다. 우주선이 별의 힘을 훔쳐 다른 별로 여행하려면 우선
잠깐 힘을 빌리고자 하는 별에 대해서 쌍곡선 궤적을 그릴 수 있는 조건으로 접근해야 한다.
쌍곡선 궤적은 우주선이 어떤 별(쌍곡선 궤적의 초점이 된다)의 중력권 내를 잠깐 비행하더
라도 그 별의 중력권에 눌러앉아 궤도운동을 하거나 착륙할 수는 없는, 쉽게 말해서 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저 멀리서 우주선이 쌍곡선을 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형태의 궤적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우주선의 상대속도가 별의 중력에 포획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빠를 때 이런 형태의 근접비행이 가능하다.

 

스윙바이의 원리는?

어떤 별(편의상 질량 M의 금성이라고 생각하자)이 다른 별(편의상 태양이라고 하자)을 중심
으로 공전하고 있을 때 우주선(편의상 질량 m의 갈릴레오라고 생각하자)이 금성의 중력권
내를 뒤쪽으로 지나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금성과 우주선의 만남 전후로 운동량
이 보존되어야 하므로 다음과 같은 식이 성립한다.

 

 

만남 전후 금성의 속도는 Vi, Vf, 우주선의 속도는 vi, vf라고 하면 위의 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다.
속도는 크기와 방향을 가지는 벡터량이라는 것은 참고하도록 하자.   

두 번째 식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금성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우주선의 질량 때문에 근접비행으로
속도를 왕창 훔쳐 달아난다는 우주선과는 달리 금성은 속도 변화가 거의 없다고 봐도 꽤 정확할
것 같다. 다음으로 만남을 전후해서 에너지도 보존되어야 하므로, 금성에 대한 우주선의 상대속
도 크기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
 (금성 근처에서의 속도가 아니라, 우주선이 그리는 쌍곡선 궤적의 점근선 근처, 다시 말해 금성
중력권 경계 근처에서의 속도 크기에 변화가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금성에게 1990년 2월 10
일에 있었던 갈릴레오 근접비행
사건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저
멀리 뒤쪽에서 우주선 하나가
중력권 안으로 들어오나 싶더니
역시나 제 중력 때문에 진행방향
이 꺾이더군요.
제 중력권을 벗어날 때쯤 다시
보니 진행방향은 바뀌었지만 처음
나타났을 때와 같은 빠르기로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어요.”라고 진술할
것이다. 아니? 그럼 갈릴레오는 속도
를 훔쳐서 더 빨라지기는 한 것일까? 

 

이제 좀 더 시야를 넓혀 태양의 이야
기를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다.
행성탐사선이 이 별에서 저 별로 여행
하려면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궤도의
고도를 바꾸거나 궤도면을 수정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이 여행에서는 금성이
아닌 ‘태양’에 대한 우주선의 상대속도를
바꿀 수 있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금성의 증언에 의하면 갈릴레오는 진행
방향만 바꿨을 뿐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데, 태양이 보기에도
그랬을까?

 

앞서 설명한 이유로 위 그림에서 속도 V ( = Vi = Vf로 생각하자)로 열심히 달리고 있는 금성이 관찰한 우주
선의 속도는 uiuf가 되고, 근접비행을 전후해서 방향만 바뀌었을 뿐 크기에는 변화가 없다. (즉, 위 그림
에서 점선으로 표시된 uiuf의 길이는 같다.) 하지만 저 멀리에 있는 태양이 보기에는 금성도, 우주선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우주선의 속도를 태양의 눈으로 바라보려면 금성에 대한 우주선의 상대속도에 금성의
속도를 더해야 한다. 즉, 위 그림에서 태양에 대한 우주선의 상대속도는 vivf가 되겠는데…, 확인해보면
정말 vfvi보다 더 길다! “제 주위를 돌고 있던 우주선 하나가 금성 뒤쪽으로 슬쩍 접근했다 멀어지는가
달아날 때는 역시나 훨씬 더 민첩해져 있더군요. 녀석, 어느새 금성으로부터 ‘슬쩍’한 속도증분으로 원일점
(遠日點, aphelion,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타원궤도상에서 태양으로부터 가장 먼 지점) 고도를 지구 뒤편
까지 높여놓은 상태였습니다.” 갈릴레오 사건에 대한 태양의 진술은 대략 이런 내용이 될 것이다.

 

갈릴레오는 금성과의 만남 이후 쌍곡선 비스무리한 궤적을 그리면서 멀어져갔고, 금성의 중력권을 벗어날 때쯤엔 다음 목적지인 더 먼 다른 별(지구였다!)까지 가기에 충분한 속도를 금성으로부터 ‘훔친’ 상태였던 것이다. 다른 우주선들도 갈릴레오처럼 하면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궤도의 고도를 높이거나 궤도면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거의’ 공짜로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선이 속도를 좀 갖다 버리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 고지식한 우주선이라면 우주선의 진행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추진력을 발생시켜주는 역추진 로켓을 점화하든지 하겠지만, 속도를 공짜로 얻을 줄 아는 우주선이라면 당연히 ‘슬쩍’ 버리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 같다. 속도를 훔칠 때와는 정반대로 접근, 그러니까 이번에는 별의 앞쪽으로 슬쩍 지나가주면 될까? 다시 속도 삼각형을 쓱쓱 그려보니, 옆 그림처럼 정말 vfvi보다 짧아지게 되어 속도를 버릴 수 있다.


 

만약 V = 0이라면, 그러니까 금성이 태양 주위를 부지런히 돌지 않고 정지해있다면 어떨까? 우주선들은
태양에 대한 상대속도를 바꾸기 위해 스윙바이가 아닌 다른 수법(?)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한 속도 훔치기와 버리기는 꼭 태양과 금성이 출연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당연히 발생한다.
태양과 지구, 지구와 달, 태양과 목성, 토성과 타이탄처럼 중심별과 그 주위를 공전하는 다른 별이 있고,
이 별들보다 질량이 훨씬 작은 제3의 물체(우주선)가 있다면 연출 가능한 현상인 것이다. 참고로 실제
우주선의 정밀한 조종을 위해서는 앞의 설명에서 고려하지 않은 요소들, 예를 들면 중심별을 포함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별에 의한 영향 등도 고려해서 보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멋진 여행 끝에 목성에 도착한 갈릴레오. (일러스트)
<출처: NASA>

 

 

공짜로 더 우주선이 빨라진다니 이상한가?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구로부터 속도를
훔쳐 신나게 날아간다는데, 우주선의 질량이 지구에 비해 무지무지 작다지만 그래도 지구도 속도를
 아주 조금은 잃는 것 같은데 정말 문제가 없을까? 유난히 하루가 길게 느껴졌던 그날, 혹시 우주선이
지구 뒤로 스윽 지나갔던 건 아닐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섣부른 오버는 금물. 지구의
 속도가 어느 정도까지 늦춰지는지, 갈릴레오 사건을 통해 한번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갈릴레오가 목성에 가기 위해 지구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훔쳐낸 속도증분의 합은 8.9km/s나 된다.
갈릴레오의 질량은 2380kg, 지구의 질량은 5.98×1024kg이니 ‘대충’ 계산해보면 이 두 사건으로 지구의
속도는 끽해야 4×10-21km/s 남짓 늦춰질 뿐이다. 1억년 동안 1.2cm쯤 늦춰지는 셈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조미옥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연구본부 선임연구원
KAIS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항공우주
연구원에서 나로호를 포함한 우주발사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출처: 네이버캐스트


[역사의 인물] 국제스포츠 지도자 '줄 리메' ⊙詩t想*글*인물

줄 리메


축구 선수라면 꼭 뛰어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이자, 본선 무대를 밟기 위한 세계 각국
대표팀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월드컵축구대회.
개인 줄 리메보다는 줄리메컵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출신의 변호사 줄 리메.
그는 월드컵축구대회의 산파이자 국제축구
연맹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24, 1928년 연속 올림픽 축구에서 우승한 우루과이는 1930년이 건국 100주년이라는 점도 강조하며 첫 월
드컵축구대회 개최를 강력히 희망했다. 각국 참가비용까지 부담하겠다는 조건도 내세웠다. 결국 이탈리아,
네덜란드,스페인, 스웨덴이 개최국 입후보를 철회하여 우루과이가 개최지로 결정됐지만, 이들 나라를 포함
한 유럽의 축구강국들이 불참을 선언했다. 자존심 문제가 컸고 먼 남미까지 간다는 부담에 자국 클럽 선수
들을 소집하여 참가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기선을 타고 대회에 참가했다 돌아오자면 석 달 기간
이 필요했다. 국제축구연맹 회장 줄 리메의 고국 프랑스에서조차 불참 여론이 비등했지만, 줄 리메가 클럽과
선수들을 적극 설득한 끝에 참가가 결정됐다.

 

 

아르헨티나, 칠레, 프랑스, 멕시코(1조), 유고슬라비아, 브라질, 볼리비아(2조), 우루과이, 루마니아, 페루(3조),
미국, 파라과이, 벨기에(4조) 등 13개국이 예선전 없이 참가했다. 조별 리그전에 이어 각 조 1위가 준결승, 결승을
치르는  방식. 1930년 7월 13일 개막전은 프랑스와 멕시코가 치러 프랑스가 4대 1로 이겼다. 개최국 우루과이가
개막전에 나서야 했으나 대회 개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줄 리메를 존경하는 뜻에서 프랑스가 개막전에 나서게
되었던 것.
4강은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우루과이, 미국. 최종 결과는 우루과이 우승, 아르헨티나 준우승, 미국 3위였다.
모두 18번의 경기를 통해 총 관중 43만 4,500명, 평균 관중 2만 4,139명, 경기당 평균 득점 3.88점이 기록됐다.

 

우승한 우루과이 팀에는 프랑스 조각가 아벨 라플뢰르가 1.8킬로그램의 순금으로 제작한 승리의 여신 니케가
8각 성찬배를 든 형상의 컵이 수여됐다. 이른바 줄리메컵이다. 줄 리메는 이 컵을 가방에 넣어 증기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1970년 멕시코대회에서 브라질이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브라질이 영구 보관하게
됐지만, 1983년 브라질축구협회 사무실에서 도난 당한 뒤 찾지 못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줄 리메는 1876년 동부 프랑스 오뜨-손 지방 퇼리-레-라본쿠르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식료품상의 아들로 태어
났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공부 잘 하는 모범생으로 자라난 그는 파리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아
11살 때 홀로 파리로 이주했다. 사실상 고학하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법학학위를 받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줄 리메는 파리의 주식시장에서 법무 담당자로 일했고, 파리 시의 신탁 관련 소송업무에도 종사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국제 스포츠계에서 활약한 인물들 대부분이 귀족 또는 상류층 출신이었던 데 비해(근대 올림픽대회에
기여한 쿠베르탱이 대표적), 줄 리메는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이러한 출신 배경과 성장 과정이 스포츠에 대한
그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줄 리메는 스포츠에서 아마추어리즘을 무던히도 강조하는 쿠베르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고상한 척 하는 속물주의이자 사회적 차별 의식으로 간주했다. 물론 줄 리메도 스포츠가 전투적 민족주의, 국가
주의를 완화시켜줄 수 있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공유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포츠가 모든 사회 계급에 의해
향유될 때 가능하다고 믿었다. 사실 그 자신은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도 높은 수준에 도달할 만큼 열심히 몰두한
적은 없었다. 대신 그는 다른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기량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그것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1897년 24살 때 그는 파리 교외에서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함께 ‘붉은 별’이라는 이름의 스포츠클럽을 출범
시켰다. 붉은 별 클럽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의 많은 스포츠클럽들과 달리 그의 클럽은 신분 계급을
불문하고 회원을 받아들였다. 붉은 별 클럽의 다양한 스포츠 활동 가운데 바로 축구가 있었다. 그와 축구 사이의
첫 인연이었다(그러나 줄 리메 자신은 축구보다는 펜싱과 육상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축구는 전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빠르게 유행되어 나가던 스포츠였다. 그러나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 축구는 별로 환영
받지 못했고, 중산층 사이에서도 ‘거칠고 사나운 사내들이나 열광하는 영국인들의 게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1904년 5월 21일 파리에서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등 7개국이 모여 국제축구
연맹(FIFA)을 창설했다. 국제축구연맹은 창설 당시부터 세계적인 규모의 축구대회에 대한 막연한 구상은
갖고 있었지만, 올림픽대회에서 치러지는 아마추어 축구 토너먼트로 사실상 흡수되는 것을 용인했다.
줄 리메는 국제축구연맹 창설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파리에서
그러한 국제적 스포츠 조직이 탄생했다는 점에 크게 매료되었다. 줄 리메는 곧 스포츠 조직가로서의
의욕과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10년 그는 프랑스 최초의 국가 축구 리그를 창설하고 회장이 됐다.
이 리그는 1919년 프랑스축구연맹(FFF)의 창설로 이어졌고 줄 리메가 회장으로 취임했다(1949년까지 재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은 스포츠의 국제적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참화와 나라 간 갈등 속에
스포츠가 자리 잡을 곳이 없었던 것. 줄 리메는 전쟁 기간 장교로 참전하여 프랑스 무공십자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은 축구가 이미 세계인의 경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14년 성탄절의
극적인 휴전 기간에 영국과 독일 병사들이 축구 경기를 하기도 했던 것.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19년 프랑스
축구연맹 초대 회장이 된 줄 리메는 2년 뒤 1921년에 국제축구연맹의 제3대 회장이 됐다. 이후 그는 1954년까지
33년 간 국제축구연맹 회장으로 일한 뒤 연맹 최초의 명예회장이 됐다. 그의 재임 기간 회원국은 85개국으로까지
늘어났다.

 

 


줄 리메의 손자 이브 리메는 할아버지를 이렇
게 회고한다. “할아버지는 저를 당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고 시를 읽어주시기도 하고 책에
관해, 음악에 관해, 자연에 관해 많은 이야기
를들려주셨지요. 축구에 관해서는 그리고
국제축구연맹에서 당신이 활동하신 것에 관
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저에게
할아버지는 스포츠보다는 문학에 더 큰 관심
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분명 너그러
운 신사였지만 깐깐한 면모도 보이셨습니다.
한 번 원칙을 정하면 포기할 줄 모르셨거든요.
예컨대 국제축구연맹에서 영국인들과 개인적
으로는 친하셨지만, 공적인 사안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단호하셨다고 합니다.
하긴, 이건 오래된 관계, 영국과 프랑스 사이
의 오랜 경쟁의식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193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2회 대회는 파
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의 선전장이나 마찬
가지였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줄 리메는
축구의 정치화에 눈 감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그가 파시즘에 공감하는 인물이라는
근거 없는 억측마저 나돌았다.
1938년 제3회 프랑스 대회에서는 독일팀이
나치식 경례를 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오스트리아가 참가하게 되어 있었지만
독일에 병합되면서 참가하지 못했고, 일부
선수들은 독일팀 소속으로 참가했다
(유대인 선수는 제외되었다). 줄 리메는
1956년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기도 했지만
그 해에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를 두고 1934년 이탈리아 대회를 두고
벌어진 논란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줄 리메는 소신 있는 민주주의자였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그는 현실 정치
를 ‘너무도 더럽다’며 멀리하고자 했으며, 축구 그 자체에서 인류 보편의 소중한 그 어떤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며 만날 수 있다. 가슴에
증오를 품거나 입으로 서로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1954년 제5회 스위스 대회 개막을 선포한
직후 국제축구연맹 회장직에서 물러난 줄 리메는 2년 뒤 1956년 파리 교회 쉬레네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4년 그는 국제축구연맹 공로훈장을 추서 받았다.

출처: 네이버 캐스트

아침을 여는 1분 독서 ⊙오늘의 생각

<용서는 나를 위한 것>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전에 싫어했던 사람에 대해
‘용서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을 과거의 사건에 옭아매어 놓게 됩니다.
지나간 일 때문에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한편, 우리는 ‘용서하겠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용서함으로써 우리의 몸과 마음은 느긋하고 여유로워 집니다.
그리고 과거의 주술에서 해방되어 안락함과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됩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행위를 잘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는 것도 아닙니다.
또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 참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지나간 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더 이상 상대방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노구치 요시노리, <거울의 법칙>에서)
 
*****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그 사람의 대한 자신의 감정을 모두 쓴 후 잘게 찢어 버리고,
그 사람의 행동을 ‘잘못’이 아니라 미숙함으로 이해한 후,
그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일을 적고,
‘나는 ○○○를 용서합니다’라고 선언하며,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싶은 일을 적고,
그 사람과 그동안 관계하면서 배운 점을 적어
‘난 ○○○를 용서했다’고 선언한다.
 
‘인생의 어떤 문제든 풀어주는 마법의 법칙’이라는 부제가 붙은
<거울의 법칙> 저자가 말하는 용서하기 위한 8가지 단계입니다.
 
저자는 이 단계들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감사 또는 사과를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사람은
그런 기분이 식기 전에 재빨리 감사 인사나 사과의 말을 건네라고 합니다.
상대방이 순순히 받아들일지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아
전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런 후 상대방을 용서하겠다고 선택한 자신을 한껏 칭찬해주라고 조언합니다.
 
용서는 남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라
나의 기분을 슬픔과 괴로움에서 행복과 기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고 나를 분노에 가두어 두고 있다면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바로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항상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출처: 예병일의 경제노트

아웃도어 의류 `가벼울수록 인기` ⊙생활*건강* 의학

`금주의 아웃도어 랭킹`

초경량 윈드자켓 `200g 미만 제품` 각광

입력시간 :2010.05.28 17:14
[이데일리 김대웅 기자] 아웃도어용품 시장은 불황을 모르는 시장이라고 합니다. 90년대 말부터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내 시장 규모는 이미 연 2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브랜드뿐만 아니라 품질, 기능, 소비자 선호도 등도 복잡하고 까다로워졌습니다. 이데일리TV는 이같은 트랜드를 전달하고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서비스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아웃도어용품 시장의 동향을 소개합니다. 단순한 브랜드 선호 차원을 넘어 기능성과 편리함, 패션으로서의 만족도 등을 두루 갖춘 적합한 용품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아웃도어 패션계에 `초경량`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초경량 의류를 입는 아웃도어 애호가들은 하나같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매우 가벼운데다 기능성까지 겸비하고 있다보니 판매량이 급증하는 등 초경량 아웃도어 의류는 최근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는 모습입니다. 

그 중 초경량 윈드자켓은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두루 활용할 수 있어 애호가들 사이에 필수 품목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바람막이와 발수처리 등의 기능을 갖춘데다 200g 미만의 매우 가벼운 무게라는 점이 인기요인으로 꼽힙니다. 
 
남자 초경량 윈드자켓의 판매량을 놓고 보면, 실용성을 강조하고 큰 유행을 타지 않는 색상의 제품을 선보인 도이터(독일)와 쉐펠(독일)의 제품이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얻으며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감각적이고 경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머렐(미국)과 피닉스(일본)의 초경량 윈드자켓도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초경량 윈드자켓을 구입할 때는 무게와 부피를 꼭 따져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또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배색 제품을 선호하겠지만 윈드자켓은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두루 사용하는 아이템인 만큼 기본 색상을 선택하는 것도 활용도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 아웃도어 팁 `등산 배낭 세탁법`

배낭은 등산의 필수품이지만 적절한 세탁 방법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때 세탁하지 않으면 배낭이 변색되거나 곰팡이가 발생할 수 있으나, 너무 자주 세탁해도 특유의 발수성이 저하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등산 배낭의 가장 좋은 세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손세탁을 한다.
2. 배낭이 잠길 만한 크기의 대야에 배낭을 담가 솔이나 스펀지로 외부를 가볍게 닦아 준다.
3. 멜빵과 허리벨트는 중성세제를 사용해 빨고 수차례 행궈 비눗기를 완전히 뺀다.
4. 기온이 높지 않고 습도가 낮은 그늘에 배낭을 거꾸로 매달아 말린다. 
 
<자료 및 전문 의견 협조 : 오케이아웃도어 닷컴 www.okoutdoor.com> 
출처: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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